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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의 살아있는 역사, 김병하 교수를 만나다

기사승인 2016.05.10  14: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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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문기자와 개교 60주년 기념 특별인터뷰

[편집자 주] 우리대학과 일생을 함께한 특수교육과 명예교수이자 대구대신문사 동문인 김병하 교수를 만났다. 멋스러운 흰 백발, 인자한 웃음과 함께 인상 깊었던 모습에서 “아, 이런 느낌을 받는다는 게 연륜이구나. 인사만 해도 포스가 있구나.” 를 느꼈다. 본지의 동문기자와 개교 60주년 기념 특별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더욱 뜻 깊었다.

지난 40년간 우리대학 특수교육과 교수로서 재직해 오셨지만, 그래도 모르는 분들 위해서 간략한 본인 소개를 한다면.

김병하 특수교육과 명예교수


평생 학생시절부터 공직생활 끝낼 때까지 우리대학과 인연을 같이 했다. 내가 64학번인데 철학과 공부를 하다가 1965학년도에 특수교육학과로 왔다. 졸업하고 경북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1971년도에 석사 마치고, 다시 모교로 와서 1973년부터 특수교육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렇게 해서 2012년 8월말까지 정확하게 40년 동안 우리대학에서 정년을 마쳤다. 또 우리대학 신문사는 학교 다닐 때 나름 각별한 인연이 있다. 1학년 때 견습기자로 시작해서 3학년 때 편집국장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학교 다닐 때 신문사 기자로서 글을 꼼꼼하게 교정 보고, 직접 기사를 썼던 게 교수생활 하면서 굉장히 도움 되었던 것 같다.

우리대학이 건학정신과 그 설립자 故 이영식 목사님 정신에 맞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사랑·빛·자유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존중되어야 하는 보편적인 사상인데, 거기에 담겨 있는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서 구성원들이 체계적으로 소통하면 교양이나 지적인 면에서 굉장히 품위 있는 대학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대학이 학문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여러가지 숙제를 많이 안고 있다.

우리대학이 처음에는 캠퍼스가 대구 대명동에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경산으로 본 캠퍼스를 옮긴 건 언제쯤이었나.
광복 직후 故 이영식 목사가 1946년에 설립한 재단 법인 대구맹아학원이 나중에 한국사회사업학교에 통합되었다. 그리하여 1980년 한사대학으로 바꾼 교명을 다음 해에 한사대학교로 바꾸면서 명실상부한 종합대학으로 부상하였는데, 교명을 다시 대구대학교로 변경했다. 지도자를 양성하자는 목적으로 오늘의 우리대학을 대명캠퍼스에 지었다. 그래서 대명캠퍼스는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성지다. 거기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가 결국 경산 캠퍼스로 옮겼는데, 지금의 캠퍼스는 세계 어느 대학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좋은 자연환경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 캠퍼스다.

40년 동안 우리대학에 교수로 재직 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육성하고, 가르치셨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다면?
교직에 있을 때 가장 큰 보람 가운데 하나는 내가 아끼는 제자를 가질 수 있다는 거다. 이번 주말이 굉장히 보람된 게 저한테 지도받아서 박사학위를 여기서 받은 첫 번째 학생이 강창욱 교수다. 강교수의 요청으로 지난 주말(지난달 22일) 강남대학 개교 70주년 기념행사로 특강을 하고, 강교수가 경기지역 특수교육과 선·후배 8명을 불러서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환담을 나눴는데 참 행복한 하루였다. 제자들 참 많지만 그 중에 딱 한 사람 말한다면 강남대학의 강창욱 교수다.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다. 교수님은 특수교육학과 교수님으로서 40년간 재직하셨는데, 장애인의 날에 대한 다른 생각이나 남들과는 다를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21세기 '저명지식인' 등재


장애인의 날은 국가에서 지정해서인지 인식개선인 부분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하루 일회성 행사로 지나쳐 버린다. 그리고 그동안 법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많이 정비가 되고 많이 발전이 됐지만 예전에 우리 심성이라든지 경쟁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풍토를 봤을 때 ‘약자와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야겠다.’라는 어떤 문화의 구축이랄까 마인드의 관용성이랄까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씩 좋아진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상당히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무한경쟁을 중시하는 이런 풍토가 지배를 하는 사회라고 생각을 한다. 여전히 약자들은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대학 신문사 3대 편집국장이셨는데, 그 당시에 신문사의 상황이나 당시 선배님들의 태도 등이 궁금하다.
그때는 언론매체는 신문이 유일했으니까, 신문이 언제 나오는지 모두의 관심사였다. 그만큼 신문이 지금에 비해 발행부수는 적었지만 신문에 대한 기대, 학내 구성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컸었고, 또 신문사에서 일하는 기자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엘리트 의식이랄까? 그런 걸 가지고 일했다. 내가 4년 동안 신문사에서 일하는 것이 재미없었더라면 내가 대학을 보람차게 졸업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문사는 지적 에너지를 그리고 나에게는 하나의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했다.

지금은 워낙 다양한 매체가 존재하고 종이신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이 신문을 읽지 않아 위상이 많이 낮아지고, 있다는 말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학이 대학다워지기 위해서 무게를 둬야 하는 게 도서관, 출판문화사업 등이 있다. 대학이 소위 하드웨어 쪽으로 하는 투자는 조금 아끼더라도 이런 출판문화 쪽이나 도서관에 학생들이 원하는 자료 확보 등을 우선적으로 지원해서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 자체에 문제도 있겠지만 지금 신문사에 있는 현직기자들도 분발해서 체계적으로 건의도 하고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럼 신문사 선배님으로서 신문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변화하면 좋을지 조금 조언을 해주신다면?
“왜 신문이 안 읽혀지는가?”에 대해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심층적이고,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거기서 문제점을 찾고 구성원들이 이 매체를 볼 수 있는 관심을 끌어내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틀림없이 독자가 외면하는 데 이유가 있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관심 받고, 사랑받는 매체로 거듭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신문사 내부적으로 심각한 내부성찰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학생들에게 바라는 점이 무엇인가?
대학은 문자 그대로 큰 대, 배울 학자(大學)이다. 크게 배우는 곳이다. 크게 배우는 곳이라고 한다면 공부다운 공부를 하는 곳인데, 대학이 그런 정신과 기풍이 서 있어야 한단 말이다. 그런데 좁은 출세 내지 입신양명에 빠져가지고 학문다운 학문, 공부다운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런 곳으로 대학이 변질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건 우리대학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학생들은 그런 대학의 원래 취지에 맞게 공부다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되지 않나 싶다.

우리대학이 건학 60주년을 맞이했다. 수십 년간 우리대학과 함께해 오셔서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다. 우리대학 개교 60주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앞에서 언급했듯이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건학정신을 가지고 있고, 환경  면에서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캠퍼스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대학이 대학다운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질적인 내용을 어떻게 채워 나가느냐 하는 것이 구성원들의 공동책임이다. 은퇴했지만 나한테도 책임이 전혀 없는 게 아니라 이런 부분을 앞으로 20년, 30년을 내다보고 체계적으로 달라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교육기관도, 학자들도 노력하고 고민한다면 금방은 표가 안 나도 조금씩 변화할 것이다. 그러니까 노력하는 과정이 아름답고, 중요한 거다. 우리대학 전체에게 그게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권미성, 김상훈 기자 al3704@naver.com, dlefull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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